추모성왕(鄒牟聖王)은 고구려의 시조로, 본명은 고주몽(高朱蒙)입니다. 그는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건국해 고대 한민족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는 시호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출생과 성장
주몽은 하늘의 신(천제)의 아들인 북부여의 해모수와 하백(강의 신)의 딸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출생 설화에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활솜씨와 용기를 지녔다고 합니다. ‘주몽’이라는 이름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구려의 건국
주몽은 동부여에서 금와왕의 아들 대소 등 왕자들의 시기와 박해를 피해 졸본(卒本)으로 남하했습니다. 이곳에서 오이, 마리, 협보 등 동료들과 힘을 합쳐 나라의 기틀을 다졌고,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이후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 등 주변 세력을 정복하며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였습니다.
왕위와 업적
주몽은 졸본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올랐으며, 고구려의 영토 확장과 체제 정비에 힘썼습니다. 그는 하늘의 아들임을 강조하는 신성한 왕권을 내세워 백성들의 결속을 이끌었고, 농경과 군사력 강화 등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신화적 요소와 단군 전통을 계승해 한민족의 정통성과 자긍심을 높였습니다.
최후와 시호
기원전 19년, 주몽은 동부여에서 첫 부인 예씨와 왕자 유리가 찾아오자 유리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같은 해 9월, 주몽은 세상을 떠나 용산에 장사 지내졌으며, 시호로 동명성왕 또는 추모성왕이라 불렸습니다. 고구려의 공식 기록과 비문 등에서는 ‘추모왕’이라는 명칭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결론
추모성왕(동명성왕)은 고구려의 창업 군주로, 신화와 역사적 업적을 아우르는 인물입니다. 그의 건국과 통치, 그리고 후대에 남긴 정신은 고구려뿐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